여자는 홀로의 여행을 꿈꾼다

여자 홀로 기다란 머리카락을 날리며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매력으로 느껴진다.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도 역시 아름답다.

해변을 혼자 걸어가면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여자의 모습도 멋지다.

이런 연출을 기대하면서 여자는 혼자서
어느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둘 이하고
싶은 여행보다는 혼자서 떠나고
싶은 여행의 충동이 더 크다.

가을과 겨울 같은 특정한 계절이 아니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분에 따라 혼자
떠날 수 있는 여행을 꿈꾸며 산다.
늘 가방을 꾸리기만 한다.

혼자 태어나서 엄마의 감시를 받으며
요조숙녀로 자라나 겨우 어른이 되어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었구나 했을 때
한 남자를 만나 연애와 결혼하게 된다.

여자는 남자가 던진 그물에 갇히게 된다.
어머니의 그물보다 더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을 들고 남자는 그 여자를 쫓는다.

그 그물을 사랑의 증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자유스럽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그물이 숨통을 조이면서
좁혀와 팔과 다리 분별력 까지도 압박한다.

그래서 그 그물의 체온을 체감하게 된다.
그 뒤 세월이 좀 지나면 아이들이 태어난다.
아이는 더 촘촘히 짜인 그물이 되어 조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강하게 조여드는
결박의 끈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묶는다.

잠시도 문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스스로 나가지 않기도 하면서 언젠가는
못 나가는 것인지 안 나가는 것인지
그 구분이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남자의 그물이 낡아서 찢어진 뒤에도.
아이들이 들고 있는 그물은 생생하다.

그 그물이 낡도록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자녀가 커서 모두 어른이 된 날
여자는 모든 그물에서 해방됩니다.

그때 자기 자신을 돌아다 보면.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땐 여자가 홀로 가방을 들고 기차역에
내려도. 아름답지 않고 매력 있어 보이질
않는다. 청승스럽고 초라해 보일 뿐이다.

그 어느 누구도 말을 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무슨 생각을 하든 알고 싶지 않다.

말하자면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끌 수 없는
여자가 되어 버린 나이에야. 겨우 모든
그물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어디든지 가고 싶지
않다. 무슨 옷을 입고 나서야 남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백화점도. 유명하고 이름난
디자이너 옷가게에도 몸에 맞는 옷은 없다.

마음으로 젊어 보이는 옷을 고르고 싶은데.
그런 디자인의 옷은 몸에 맞는 치수가 없다.
좋은 옷 입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제부터야 말로 자기 자신으로
여자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놓친 시간이 아무리 아깝다
해도.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잊어버리기로 한다. 지워버리기로 한다.
여자는 주변 가까운 사람이 던져 놓았던
그물이 낡아 찢어지고. 해지는 시간부터
나무꾼의 선녀처럼 자기한테로 돌아간다.

챙겼다가 풀었다가 또 챙기고 다 풀었던
가방을 천천히 잘 생각해 가면서 꾸린다.

여자는 한숨짓고 울면서 뱉어내는 말은
집을 나가겠다는 말이 최고의 반항이다.

그것은 나는 절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아 달라는 의미였던 게 분명합니다.

가족의 관심이 여자로부터 떠나고 나서도
그냥 그곳에 머물러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데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살아 왔다. 이젠 어디든지 갈 수도
있지만, 막상 혼자 어딜 떠날 용기가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래요,

- 이준호 글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