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는 자.

 오늘은 ‘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는 자’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6장 41절 말씀에“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두 눈을 주셨는데 아차 실수하는 바람에 자기를 보는 눈은 만들지 않으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두 눈은 나 이외에 참 많은 것을 보지 않습니까? 특히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보고 그를 탓하고 미워하고 정죄하고 심지어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대들어 싸우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 한다’고항변하십니다.

 

오히려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라’는 말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외치면서도 자신의 들보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하거나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이 이중성의 모습을 예수님은 야단을 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타인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볼 때 허물이 장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나 스스로 겸손하고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5장 1절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히브리서 7장 28절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누가복음 6장 37절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게리 토마스

 당신의 성숙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고통을 쉽게 거절하지 말아라.
- 게리 토마스 -

파라칼레오

 오늘은 ‘파라칼레오’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에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달라고 하여 나름대로
성공을 해보겠다고 도시로 나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평소 사업을 해보지 않은 둘째 아들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바르지 못한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결국은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아버지는 쏜살같이 달려가
돌아온 아들을 반겨줍니다. 그리고 잔치를
벌입니다. 바로 이 모습을 본 첫째 아들은
마음에 시기심이 가득 찼습니다.


‘나는 죽어라고 고생만 하고 아버지 말씀
잘들은 결과는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누가복음 15장 28절 말씀에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권한대라는 말은 바로
‘파라칼레오’라는 원어입니다. ‘파라칼레오’는
‘파라크레토스’라는 성령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런데 이 파라칼레오는
‘초청하다, 위로하다’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즉 따뜻하고 포용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으며
곁에서 함성을 질러 준다는 뜻도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늘 같이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도 여전히 따뜻한 아버지로
위로해주는 아버지로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아버지로 함께 하여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3장 16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잠언 14장 30절
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잠언 28장 25절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빌헬름 브르만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해주는 것이지

결코 힘겨운 짐이 아니다.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노동을 싫어한다.
- 빌헬름 브르만 -